찬바람 부는 공모주 시장
용돈벌이 수단으로 인기를 끌던 공모주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투자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만 해도 143%에 달했던 공모주 투자 수익률이 10월 8.6%로 떨어졌다.
설상가상 상장하자마자 하한가 수준으로 떨어지는 종목도 나왔다. 지난 1일 증시에 입성한 초등학교 방과후 교구업체 ‘에이럭스’는 시초가부터 공모가(1만6000원) 대비 22% 내린 채 출발했고, -38.3% 하락한 9880원에 마감했다. 한국 공모주 역사상 상장 첫 날 최대 낙폭이다.
투자 업계에서는 공모가를 부풀리고, 상장 기업의 성장성을 믿고 장기 보유하겠다는 확약 비율이 낮다 보니 상장일에 파는 매물이 쏟아지는 것으로 해석했다. 거품 붕괴 조짐이 나타날 때는 공모주 청약은 물론, 신규 상장주 매매도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치킨 투자’ 열풍의 수단이 된 공모주 투자
공모주 투자는 지난해 6월 상장 첫날 가격제한폭이 공모가의 200%에서 400%로 확대되면서 인기 재테크 수단으로 부상했다. 작년 말 상장 당일 400% 상승을 기록한 ‘따따블(공모가의 4배 상승)’ 종목이 등장하면서 공모주 열풍이 극에 달했다. 조(兆) 단위로 청약 금액이 몰리는 사례도 속출했다.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균등배분제’ 혜택을 보려고 가족 계좌까지 동원하는 사례도 들었다. 이른바 ‘치킨 한 마리, 3만원만 벌겠다’는 치킨 투자단이다. 개미들이 공모주 시장에 몰리자 증권사들도 빠르게 대응했다. 지난 달 공모주 청약 신청을 받은 기업 수는 17곳(스팩 제외)을 기록해, 월별 기준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상초 기업 속출하는 이유
하지만 요즘 투자자들은 예상치 못한 주가 부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모주 시장에서 10월은 황금의 달로 꼽히는데, 신규 종목들이 모조리 마이너스 행진 중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모가가 회사 가치보다 부풀려지면서 시장에 왜곡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0월 이후 신규 상장사 12곳 중 10곳의 공모가가 희망공모가 최상단을 초과해서 책정됐다. 업계에선 ‘상초(상단 초과)’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작년만 해도 전체의 10~20% 수준이었는데 올해 80%까지 높아졌다.
공모가 대비 46%가 떨어져 10월 상장사 중 하락률 1위인 로봇솔루션업체인 ‘씨메스’ 역시 상초 기업이다. 공모가(3만원)가 회사의 희망공모가 상단을 25% 초과했다. 씨메스 관계자는 “공모가는 수요 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이 써낸 가격에 따라 정해졌는데 참여 기관 80% 이상이 희망 공모가 상단을 초과한 높은 가격을 써냈다”고 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모주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새로 뛰어든 기관들이 현재 800곳이 넘는다”며 “경쟁이 치열해져서 물량을 더 확보하려면 수요예측 과정에서 높은 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관행이 된 공모가 뻥튀기
애초에 희망 공모가가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은 동종업계 상장 기업들의 주가와 비교해서 공모가 희망 범위를 정한다. 그런데 상장사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미래 추정 실적을 과도하게 높이거나 해외 유수 기업들의 주가와 비교하고 있다.
가령 적자 기업인 ‘씨메스’는 시가총액 150조원인 공장 자동화 설비업체인 일본 키엔스와 세계 1위 산업용 로봇 업체인 일본 화낙(시총 36조원)을 비교 기업으로 골라 회사 가치를 산정했다. 11월 상장 예정인 디지털 테마파크 업체 ‘닷밀’은 비교기업에 헬로키티로 유명한 일본 산리오(시총 9조3000억원)를 꼽았다.
이에 개인 투자자들은 한국 공모주 생태계가 다수의 자금을 모아 소수에게 이익을 주는 로또 복권처럼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엔젤 투자자들은 비싸게 판 후 빠르게 탈출하고, 증권사들은 공모가에 비례해 수수료 받으니 높이려고만 하고, 국가는 거래 수수료로 이득을 보니까 개미줄만 피눈물을 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미국에선 소송감
단타 목적에서 공모주 물량을 받은 기관들은 장기 보유 확약을 하지 않고, 상장 당일 가격이 높을 때 수익을 내고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덜컥 매수한 개인들은 손실을 떠안고 장기 보유하게 된다.
상장 첫 날 역대 최대 낙폭(-38.3%)을 기록한 에이럭스의 경우 공모주 투자자는 물론이고, 이날 매수에 가담한 개미군단(순매수 227억원)까지 모조리 손실인 상태다. 하지만 상장 주관사는 성과 수수료와 청약 증거금 이자 등까지 더해서 23억원(공모주 전문가 추정)의 수익을 챙겼다.
이에 투자자를 위한 안전망이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상장시 예상실적을 의도적으로 부풀려 신고·제출하거나 부정적 사실을 고의로 알리지 않으면 전문로펌들이 주주들과 연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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