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어진 틀 없는 스타트업을 위한 스타트업

더 비비드 2024. 7. 9. 13:35
더자람컴퍼니 천세희 대표 인터뷰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도 처음엔 소기업이었다. ‘유니콘’ 기업의 성장을 목격한 인재들이 속속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한 편에선 주어진 틀이 없는 스타트업의 문화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도 많다.

더자람컴퍼니는 스타트업 인재들이 방황하며 뒤쳐지지 않도록 스타트업 전문 교육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네이버, 맥도날드, 우아한형제들, 클래스101 등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두루 거친 천세희 대표가 창업했다. 그에게 '일 잘하는 법'을 들었다.

◇대우증권 직원에서 억대 연봉 프리랜서로

더자람컴퍼니 천세희 대표. /더비비드.
천 대표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성장 욕구'를 꼽았다. /본인 제공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대우증권 고객센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증권사 고객상담실에 입사했어요. 신규 조직이었죠. 6개월 만에 CS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던 분으로부터 프리랜서 CS 컨설턴트직을 제안받았어요. 증권사, 은행 등에 고객센터가 막 생겨 나던 시기라 구성원을 교육 수요가 크게 늘었거든요. 주변에서는 좋은 증권사를 왜 관두냐 만류했지만, 망설임 없이 수락했습니다. CS업무에 종사자들에게 운영 능력을 가르쳐주면서 동시에 저도 일을 더 배울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프리랜서 컨설턴트로서 치열한 4년을 보냈다. “강의용 콘텐츠를 채우느라 일주일에 책을 3~4권씩 읽었습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잤죠. 이렇게 준비해서 한 달 100시간씩 강의를 다녔습니다. 잘하기 위해선 많이 하는 것밖에 방도가 없다고 생각해서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네이버 거쳐 맥도날드로

강연 중인 천 대표. /본인 제공

2005년 고객사 중 하나였던 네이버 담당자로부터 고객서비스팀 입사 제안을 받았다. 당시 네이버는 지금만큼의 공룡 기업은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연 1억원 넘는 수익을 받던 시절이었는데 그 절반만 받기로 했어요. 심지어 6개월짜리 단기직이었죠. 그래도 가능성을 믿고 새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어려운 스타트업 용어에 적응하는 게 버거웠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입사 10개월 만에 과장에서 팀장이 됐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알아낼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에요. 새로 배우는 게 늘 즐겁습니다. 4년 동안 커뮤니티 서비스 본부 소속으로 있으면서, 메일, 카페, 블로그 등 정보 플랫폼 위주로 일반 유저에 대한 이해를 키웠어요. 이후 3년 간 검색 광고 서비스 본부에서 광고주에 대한 이해도를 키웠구요."

오랜 기간 한 조직에 몸 담으니 ‘내가 대외적으로 경쟁력이 있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고민에 빠졌을 때 ‘맥도날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리더를 뽑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호기심에 지원해서 면접까지 갔는데 도전의식이 샘솟더라고요. 캐나다인 면접관에게 ‘영어 잘 못하지만 일하는데 지장 없도록 빨리 익히겠다’고 어필했죠.”

천 대표는 회사를 옮길 때마다 전 직장에서 경험한 바를 꼭 활용했다. /본인 제공

2011년 맥도날드의 CS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입사했다. “맥도날도의 CS서비스에 네이버에서 배운 IT 기술을 적극 접목했습니다. 전 지점의 고객불만사항을 하나로 통합하는 인트라넷 설계, 맥도날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리포트를 만들어주는 시스템, 블로그 홍보대사 등을 도입하니 2년이 훌쩍 흘러가 있더군요.”

-네이버와 맥도날도의 기업문화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네이버는 블로그, 카페 등 각 서비스 담당자들이 오너십을 가지고 일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네이버의 청사진을 그려 나가는 게 너무 즐거웠죠. 반면 맥도날드에서는 50년 전통의 회사가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지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맥도날드의 위대함은 전 세계 빅맥 맛이 똑같다는 데서 나온다’는 말처럼 모든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요. 맥도날드에서 일한 게 돈 받고 MBA를 다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배달의 민족 재직 시절의 모습. /본인 제공

다음 행선지는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었다. “네이버 출신들이 창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송파 석촌호수에 치킨을 먹으러 갔어요. 밝고 희망찬 스타트업의 분위기를 현장에서 느끼니 저도 스타트업에 들어가고 싶더라고요. 당시 유명 IT 기업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는데, 게임의 룰을 처음부터 만들 수 있는 우아한형제들에 마음이 끌렸어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우아한형제들 고객만족실을 시작으로 식당 대상 교육서비스 '배민아카데미', 배달비품 전문 커머스 '배민상회' 등 신규 조직을 이끌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스타일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죠."

◇스타트업 비즈니스총괄 맡으며 다양한 J커브 경험

배달의 민족 재직 시절의 모습. /본인 제공

직장 경력 20년을 꼬박 채우고 나니 쉬고 싶었다. 자녀가 세 명이었다. 육아에 집중하려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주변에서 컨설팅 해달라, 강연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6개월 동안 5~6곳의 회사를 컨설팅 했어요.”

그 중 하나가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이다. 은퇴 선언이 무색하게 클래스 101의 비즈니스 총괄 담당자로 합류했다. “마케팅, 세일즈 운영을 총괄하는 자리였습니다. 새로 생긴 조직에 인재들을 영입하며 회사를 키워 나갔죠. 좋은 사람을 데려오는 게 시니어의 역할이니까요. 클래스101에서 머물던 1년 반 동안 매출이 5배 넘게 성장했어요. 지난해 9월엔 온라인 채팅상담 툴 ‘채널톡’의 COO로 조인했습니다. 올해 2월까지 6개월만에 매출을 2배 이상 끌어 올렸죠. 남들이 한 번 보기 어렵다는 J 커브를 다양한 조직에서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어 지난 2월 스타트업 대상 컨설팅, 교육 서비스를 운영하는 더자람컴퍼니를 설립했다. “스타트업들의 컨설팅 요청이 들어오는데 제 몸은 하나잖아요.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고요. 차라리 교육, 컨설팅 플랫폼을 만드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자라고, 더 잘한다’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어요.”

◇스타트업 중간 관리자를 위한 교육 서비스 창업

천 대표와 더자람컴퍼니 구성원들. /더자람컴퍼니

4월 온라인 교육 서비스 그로우앤베터(Grow&Better)를 시작했다. “입문자 중심의 VOD 실무 교육 서비스는 많아요. 최고 경영자들은 MBA 등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죠.  그런데 팀장 등 중간관리자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은 없어요. 저희는 신입사원과 경영진의 다리 역할인 중간관리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분들이 추진력을 발휘해야 스타트업이 고속성장을 할 수 있거든요.”

그동안 스타트업을 컨설팅하면서 접한 고충들을 기반으로 5개의 과정을 오픈했다. 교육은 줌(ZOOM)으로 실시간으로 진행한다. ”팀장급 중간 실무자들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 등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꾸렸어요. 예컨대, '연봉 천만 원 올리는 CXManager 실전 노하우'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회사의 특성과 비즈니스 단계에 맞는 CX(고객경험)전략, 고객 커뮤니케이션 설계 및 효율적인 응대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건강관리 앱 눔 코리아의 김영인 대표 등이 리더로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그로우앤베터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더자람컴퍼니

스타트업 실무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은 덕에 창업 1개월 만에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프론트원과 스페이스 살림이 공동 개최한 5월 디데이(창업경진대회)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3개월 동안 100여명의 수강생이 그로우앤베터를 거쳤습니다. 고객사로부터 ‘이번에 번 돈으로 우리 직원들 그로우앤베터 보내겠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해요. 팀원의 성장을 중시하는 리더들의 마음이 예쁘잖아요. 앞으로도 일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도록 돕는 촉진자(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잘 하고 싶어요.”

◇스타트업 MBA 꿈꿔

/천 대표 제공

스스로 도전하며 역량을 키워야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안정적인 자리, 연봉 보다는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플랫폼에서 제 몫을 찾아야 하는 곳입니다. 한 업무와 한 자리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계속 남는 건 위험한 시대입니다. 스스로 빛날 줄 알아야 어딜 가든 성공할 수 있죠. 스타트업 취업이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어요.”

자기객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잘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해요. 내 강점을 알고 일에 뛰어들면 성과가 좋거든요. 남들이 생각하기에 멋진 일 대신 스스로 일의 의미를 찾고 내 일을 귀하게 여겨야 하죠. 제가 잘하는 건 고객 눈높이에 맞추는 일이에요. 고객 고충을 쉽고 직관적으로 해석한 덕에 맥도날드, 우아한형제들에서 다양한 정책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우앤베터를 ‘스타트업 MBA’로 키우는 게 목표다. “얼마 전 사주를 봤는데 ‘75세까지 일할 팔자’라더군요. 지겹다기보다 만족스러웠어요. 70대까지 유니콘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며 테헤란로에 머무는 게 제 희망사항이거든요. 당분간은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해서 수강생을 증가시키는게 목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실무 배우려면 그로우앤베터에서 공부 해야한다’는 말이 나오게 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