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네 휘트니스 센터 인턴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로, 그의 성공 비결

더 비비드 2025. 6. 16. 09:23
기능성 하체 운동 기구 ‘슬라힙’ 개발한 ‘라인에 반하다’ 전유리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기능성 하체 운동 기구 ‘슬라힙’ 개발한 ‘라인에 반하다’ 전유리 대표. /더비비드

“더 나이 들었을 때, 걸어서 화장실은 가셔야죠!”

운동에 소홀했던 사람도 단번에 움직이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은 빠르게 감소한다. 무릎 관절이 시리고, 허리가 굽는 것도 결국 ‘근육’의 문제다. 몸을 지탱해 주는 힘이 근육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근 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만이 답이다. 정답을 알아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약 16년간 수백 명의 운동을 지도해 온 ‘라인에 반하다’ 전유리(37) 대표는 ‘매일 2분’을 강조한다. 근육은 ‘신경 세포’의 일종이기 때문에 자주 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1시간 운동하고 일주일 동안 쉬는 것보다, 단 2분이라도 매일 근육에 자극을 주는 것이 몸에 훨씬 이롭다는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몸의 중심이 되는 ‘골반 주변 근육 단련’을 우선순위 0번으로 꼽았다. 전 대표를 만나 운동의 정석을 들었다.

◇골반·하체 운동에 특화, 기능성 운동 기구 

슬라힙을 정면에서 봤을 때(왼쪽), 위에서 봤을 때. /라반, 더비비드

슬라힙은 틀어진 골반 교정에 특화된 특허 받은 운동 기구다. 기구는 정면에서 봐도, 위에서 봐도 ‘시옷(ㅅ)’ 모양이다.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 근육이 시옷처럼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꼭대기에는 발이나 무릎을 올려둘 수 있는 패드가 한 쌍 있다. 양발이나 무릎을 패드에 올린 상태에서 하체를 움직이면 대퇴사두·내전근·골반저근·둔근·힙딥·척주기립근 등을 자극할 수 있다. 상하좌우 뿐만 아니라 대각선으로도 움직이며 속 근육까지 구석구석 힘이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무릎이나 양발을 패드에 올린 상태에서 하체를 움직이면 골반 주변 근육 곳곳을 자극할 수 있다. /라반

고무의 장력으로 근육에 자극을 주는 방식이다. 기기 내부의 고리에 자신의 힘에 맞는 고무를 걸어서 운동하면 된다. 노란 고무는 10㎏, 검정 고무는 20㎏의 장력이 있다. 허벅지 안쪽 운동은 밴드 체결이 체중보다 가벼울수록 힘들고, 허벅지 바깥쪽 운동은 밴드 체결이 체중보다 무거울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인턴에서 사장님이 되기까지

전 대표가 담당 회원의 운동을 지도하는 모습. /더비비드

충북 청주시에서 나고 자랐다. 충청대 건강관리과에 진학해 체육·보건·영양학 등을 배웠다. “트레이너 경력이 있던 동기를 통해 PT(퍼스널트레이닝)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어요. 저더러 운동에 소질이 있다며 ‘트레이너’를 권하더군요. 뭐든 직접 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방학 기간을 활용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월드짐’이라는 휘트니스 센터에 인턴으로 일자리를 얻었죠.”

​2009년 월드짐 대치점은 정직원 트레이너가 30명에 육박할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첫 달엔 다른 트레이너들이 레슨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게 고작이었어요. 몇 주가 지나자 오지랖이 발동했습니다. 자주 마주치는 회원에게 안부를 묻거나, 혼자 운동하는 분에게 다가가 자세를 알려드렸는데요. 그러자 회원 중 5명이 저를 콕 집어서 PT를 등록하겠다고 하더군요.”

전 대표(왼쪽)는 25살의 나이에 ‘라인에 반하다’ 센터를 개업했다. 개업 초기에는 러닝머신 3대에 요가 매트 몇 장뿐이었다. /라반

두 달만 하기로 했던 일이 석 달이 되고 넉 달이 됐다. “담당 회원이 늘면서, 월급도 가파르게 상승했어요. 첫 달 월급 60만원에서 다음 달은 160만원, 셋째 달엔 300만원으로 껑충 뛰었죠. 그렇게 3년 6개월 만에 ‘팀장’직까지 달았습니다. 어느 날 내가 전체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궁금해졌어요. 정산표를 살펴보니 1년간 받은 수업료가 1억원이 넘더군요. 욕심이 생겼습니다.”

25살의 나이에 ‘라인에 반하다’라는 이름을 걸고 직접 운동 센터를 개업했다. “‘망해서 나간다’라고 소문난 건물이었지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을 듣고는 덜컥 계약했습니다. 러닝머신 3대에 요가 매트 몇 장, 운동 기구 1~2개 정도밖에 없었어요. 월드짐에서 인연을 맺었던 회원들이 첫 고객으로 와 주셨죠. 매출이 생기는 족족 중고로 운동 기구를 사거나 신형으로 교체했어요. 금세 입소문이 났고 1년 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3년 차부터는 광고도 안 해요.” 

‘라인에 반하다’ 센터에서 운동하는 회원의 모습. /더비비드

회원들에게 운동을 지도할수록 보람과 걱정이 함께 쌓였다. "어떤 분이 ‘난 100살까지 살 거니까 선생님은 80살까지 수업해 주셔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기쁘지만은 않았어요. 혹여나 제가 불가피하게 운동을 도와드리지 못하게 되면 이분들의 건강은 어떻게 하나 싶어 걱정스러웠습니다. 운동을 가르쳐드릴 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골반’인데요. 골반을 중심으로 주변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 기구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상·하체 근력 키워주는 운동 기구 ‘슬라힙’ 개발노트

1. 필요하다면 직접 개발하라

전 대표가 슬라힙으로 운동하는 모습. /더비비드

2020년 3월부터 골반 중심 홈트레이닝 기구 개발에 뛰어들었다. “러닝머신처럼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하체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기구를 고안했어요. 대신 관절에 부담이 없도록 발이 아닌 무릎을 대고 움직일 수 있는 구조였죠. 수십 년 경력이 있는 설계사를 소개받아 수천만원의 비용까지 지급했는데요.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차일피일 제작을 미루는 통에 도저히 이어갈 수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기능성 하체 운동기구’에 대한 특허를 등록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홈트레이닝 기구의 필요성을 더욱더 절감했다. “기존에 개발했던 기구를 경량화해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하체 근육 단련에 좋다고 알려진 ‘런지’, ‘스쿼트’ 같은 동작은 단순한 수직 운동에 불과합니다. 골반과 생식기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골반 저근은 대각선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대각선으로 근육을 이완·수축하는 동작이 가장 효과적이에요. 그 방향과 모양을 따라 다리를 슬라이딩하듯 움직이며 운동할 수 있는 기구, 일명 ‘슬라힙’을 설계했습니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2. 협상의 기술은 ‘공부’로 터득할 수 있다

전 대표는 ‘2023 이공계 여성 예비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전유리 대표 제공

같은 실수를 두 번 할 수는 없었다. 설계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카페에 가입해 올라오는 글을 죄다 찾아 읽었다.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학생에게 연락해 설계를 맡겼습니다. 당시 제 유튜브 알고리즘은 죄다 설계, 생산에 대한 것뿐이었어요. 블랭킹(도려내기), 펀칭(구멍 뚫기), 파일럿(소재 위치를 잡아주는 핀), SPM(프레스기의 속도) 등 용어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죠. 이젠 베테랑 공장장과 마주 앉아 협상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예요.” 

​설계한 도면을 들고 ‘2023 이공계 여성 예비 창업경진대회’에 나가 우수상을 받았다. “친구나 지인들, 센터 회원분들과 나눠 쓸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요. 상을 받고 나니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필요한 기구’라는 사실을 확인받은 듯했어요. 용기를 얻어 유명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 ‘슬라힙’을 올렸습니다. 5개월 뒤 배송한다는 조건을 달았는데도 2억원이 넘는 돈이 모였어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어떻게든 5개월 안에 모든 수량을 생산해야 했어요.”

3. 모든 부품에는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

슬라힙에 들어간 ‘ㄷ’자형 바퀴(왼쪽)와 고무(가운데). /더비비드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언뜻 보기에 단순한 외형이지만 부품 하나하나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가령 바퀴를 ‘W’형의 뾰족한 모양에서 ‘ㄷ’자 형으로 바꿔 안정성을 높였어요. 운동 효율을 높이기 위해 스프링 대신 고무를 사용했습니다. 스프링은 튕기는 성질이 있어 특정 구간에서는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죠.”

그 외에도 지름 8㎜ 굵기의 기둥, 바퀴 옆 스테인리스판, GF(Glass fiber)가 15% 들어간 ABS 플라스틱 등 어느 하나 명확한 이유 없이 들어간 부품이 없다. “모든 구성 요소를 좌우로 각각 제작해 근육의 결에 맞는 움직임을 구현했어요. 덕분에 금형(대량 생산을 위한 금속 틀)을 20개 이상 제작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초기 시제품(왼쪽)과 최종 수정을 마치고 출시한 슬라힙 제품(오른쪽). /더비비드

슬라힙을 완성하기까지 총 7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시제품이 나올 때마다 ‘라인에 반하다’ 센터 회원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했다. “10~15년간 운동을 지도해온 터라 제 사정을 다 알고 계셨어요. 운동 기구를 개발한다고 할 때부터 응원해 주셨죠. 직접 써보시곤 절대 좋은 소리만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무릎을 대고 오래 운동하면 배겨서 불편하다는 후기가 많았어요. 실내화에 주로 쓰는 ‘보드폼’으로 패드 소재를 바꾸고, 1.3㎝ 두께의 패드에 1.5㎝를 덧대 2.8㎝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4. 소비자는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찾아갈 방법을 먼저 찾아라

박람회에서 슬라힙을 체험하기 위해 참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전유리 대표 제공

첫 펀딩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전체 수량 1200대 중 400대가 불량으로 배송까지 된, 큰 실수가 있었어요. 한 부품의 본드칠이 안 된 상태였고 그 때문에 발판 한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전량 회수해 반품 처리를 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소비자의 반대가 컸어요. 환불은 8~9%에 그쳤고, 불량품을 받은 대부분의 소비자는 새 제품을 받을 때까지 더 기다리겠다고 했죠. 생산 문제로 1200대를 팔고도 적자를 봤지만, 품질 관리에 늘 경각심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슬라힙을 알리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뛰었다. “운동 방법을 자세히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세로 영상을 찍어 유튜브 채널에 올렸습니다. 각종 박람회도 나갔어요. 건강산업박람회, 국제스포츠레저산업전(SPOEX)은 물론 베이비페어까지 나갔죠. 참관객들이 슬라힙을 체험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운동을 배워본 적 없다는 70대 어르신부터 수십 년간 운동 역학을 공부했다는 교수님까지 모두 엄지를 치켜세웠어요. 박람회를 계기로 재활병원, 골프 연습장, 헬스장, 필라테스샵 등에서 대량 주문도 받을 수 있었죠.”

◇남자의 마음도 사로잡은 기구

슬라힙을 옆에 끼고 활짝 웃고 있는 전 대표. /더비비드

2024년 슬라힙은 출시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4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그중에는 대만·홍콩·일본 등 국가로의 수출도 있다. “슬라힙은 개발과 동시에 특허를 등록했는데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벌써 중국에서 만든 모조품이 심심찮게 보이더군요. 2025년 안에 중국·미국·유럽 등 국가별 특허도 등록할 계획입니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 했던가. 전 대표의 남편은 슬라힙 출시 1년이 넘도록 운동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남편도 저처럼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부터 수업 시간에 슬라힙을 쓰기 시작하더군요. 100㎏이 넘는 남성 회원이 힘차게 발을 굴러도 거뜬했다는 후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골반·엉덩이·허벅지는 주로 여성들이 많이 운동하는 부위지만, 나이가 들수록 골반 저근이 약해지는 건 여자건 남자건 마찬가지예요. 하루 2분이면 됩니다.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운동’의 매력에 빠지길 바라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