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관두고 개발, 나도 몰랐던 내 미모를 찾아내는 로봇 사진 작가
2년 연속 CES 혁신상, AI 로봇 사진작가 개발한 스튜디오랩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부산역 2층 바다맞이방에 가면 이색적인 사진 스튜디오가 있다. 카메라를 장착한 로봇팔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다. 로봇 사진작가 ‘젠시 PB’다. 키오스크에서 결제 후 배경, 스타일을 선택하면 젠시 PB가 피사체를 감지해서 최상의 구도를 잡고 알아서 촬영 버튼을 누른다. 잠시 기다리면 사진이 인화된다.


로봇 사진작가 ‘젠시 PB’는 우리나라 스타트업 ‘스튜디오랩’이 만들었다. 1월에는 젠시 PB로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로보틱스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CES는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행사로, 전 세계 약 150개국에서 기업 4000~5000곳이 참여한다. CES에 출품된 제품과 서비스 가운데 세상을 바꿀 곳에 ‘혁신상’을 수여한다. 스튜디오랩은 2024년 상세페이지 자동 생성 AI ‘젠시’로 인공지능(AI)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혁신상을 받았다. 스튜디오랩을 창업한 강성훈(41) 대표에게 창업 과정과 경쟁력은 무엇인지 들었다.
◇알아서 상세페이지 기획, 제작하는 AI
스튜디오랩은 강 대표와 이재영(42) 이사 등 삼성전자 출신을 주축으로 한다. AI와 로보틱스 기술을 기반으로 커머스 업계 비효율을 없애고 시장을 혁신하겠다는 포부다. 2020년 1월 삼성전자에서 사내벤처를 육성·지원하는 제도 C랩에 뽑혀 ‘섬유 재질과 의류 분석 설루션’으로 창업한 것이 시작이다. 2021년 5월 강 대표와 이 이사는 함께 삼성전자를 퇴사하며 분사했다.

강 대표는 의류 분석 AI를 패션 커머스에서 활용할 방법을 구상했다. 업계 의견을 듣고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사진 촬영 스튜디오를 열었다. “소상공인 판매자 하나 같이 ‘모델 사진 촬영하고 상세페이지 만드는 일’이 힘들다고 꼽았어요. 모델 섭외해서 사진 찍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상세페이지에 들어갈 마케팅 문구, 제품 정보 구성하는 일이 상당히 번거롭다고요. 옷 디테일이 달라지면 업데이트도 해야 하고요.”
강 대표는 여기서 ‘상세페이지 제작 AI’라는 사업 확장을 위한 실마리를 얻었다. “저희가 C랩에서 만든 의류 재질·특성 분석 설루션을 가다듬으면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시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나아가 온라인 커머스를 혁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패션 전공 서적을 통째로 학습한 AI를 만들기로 했다. 의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전문가 등 100여명을 대면 인터뷰해 의류 특징, 패션 용어, 마케팅 문구 등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2024년 초, 사진과 키워드만 있으면 알아서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셀러캔버스(현 젠시)’를 출시했다. AI 사진작가이자, 디자이너이면서, 카피라이터다. 사진 여러 장을 한꺼번에 올린 뒤, 옷의 특장점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넣는다. ‘브이넥 티셔츠’, ‘순면 100%’, ‘네이비 줄무늬’과 같은 식이다. 그러면 AI가 각 특장점에 맞게 사진을 배치하고, 마케팅 문구를 구성해서 상세페이지를 만든다.
복잡한 프롬프트(명령어)를 넣는 과정은 없다. 젠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별다른 다운로드 과정 없이 바로 사용한다. 회원가입을 하면 3번까지 무료로 쓸 수 있다. “사용법이 직관적이고 쉽습니다. 별다른 설명 없어도 2~3번 해보시면 익숙해질 거예요. 사진, 디자인, IT 지식이 없는 자영업자와 MD(상품기획직무)도 쉽게 쓸 수 있는 커머스 업무 툴이 저희 취지였습니다. 아무리 AI가 똑똑하다 한들,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쓰임새가 없으니까요.”

제품을 출시한 지 막 1년을 지났는데 LG패션, W컨셉, 신세계쇼핑, GS리테일 등 대기업이 젠시를 쓴다. 작년보다 매출이 3~4배 늘었다. 1월 말에는 프리A 시리즈로 33억원을 투자받았다. 디캠프, SBI인베스트먼트, 네이버, 서울경제진흥원 등이 참여했다. “보통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데 2시간 이상 걸리는데, 젠시를 사용하면 검사까지 포함해도 10분이면 상세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어요. 젠시를 사용하는 현업에 물어보니 2~3일에 상세페이지 100개를 만든다고 하는군요. 효율성이 이전보다 2~3배를 향상된 겁니다.”
◇패션 커머스를 혁신할 AI 로봇 사진작가

‘젠시 PB’도 의류 분석 AI에서 파생된 서비스다. 로봇 자율주행 기술, 로봇암, 카메라 등이 AI와 연결돼 있다. 원격 조종은 없다. 감도와 구도를 잡고 촬영 타이밍까지 알아서 판단하는 로봇 사진작가다. 허리까지 오는 웨이스트샷, 가슴까지 찍는 바스트샷 등 다양하게 설정한다.
‘로봇이 찍어주는 사진’에서 그치지 않고, 누구나 좋아할 촬영 품질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AI 기술을 보고 그저 신기해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젠 AI가 실제 업무 효율을 높여줘야 해요. 로봇팔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찍었는데 사진이 맘에 안 든다? 다신 찾지 않겠죠. 빛에 따라 조리개를 여닫는 로봇을 만드는 건 쉬워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느낌을 구현하는 건 다릅니다. 최적의 구도, 감도를 찾기 위해 베테랑 영상 감독을 영입해 AI에 학습시켰어요. 고도화하는 데만 1년을 썼습니다.”
지금 ‘젠시 PB’는 KTX 부산역 2층 달맞이방에서 체험할 수 있다. 강 대표는 젠시 PB를 활용해서 팝업 스토어, 체험존을 만들 협업사와 논의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팝업스토어가 마케팅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만큼, 젠시 PB의 사업성을 시험하기 가장 좋은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역시 현장에서 젠시 PB의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의견도 들을 수 있고요.”
◇올해 미국 아마존 글로벌 진출 목표

강 대표는 원래 문과생이다. 경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카이스트에서 정보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연히 군대 선임에게 코딩을 배우고 흥미를 느낀 그는 대학교 재학 시절 크고 작은 애플리케이션을 여럿 만들었다. 한번은 혼자서 하는 온라인 방 탈출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용자수가 10만명을 넘기기도 했다. 2010년 삼성전자에 입사해선 갤럭시 워치에서 사용하는 라이브 월페이퍼를 만들어서 앱스토어 올리는 등 부업을 했다. 갤럭시 온오프라인 마케터로 일할 때였다. ‘기술을 이해하는 마케터’로 통한 덕분에 다양한 TF(태스크포스) 팀에 차출됐고, 스타트업 육성·지원 조직해서도 일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좋아하는 일’로 꼽았다. “낯선 분야여도 관심도가 높으면 물고 늘어지게 되더라구요. 요즘엔 생성형 AI도 있고, 전 세계 다양한 커뮤니티까지 정보를 얻고 학습할 방법이 무궁무진합니다. 이제 정말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밖에 없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열심히 해야지’라는 다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되거든요.”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는 ‘팀 빌딩(조직 개편)’이다. 하반기에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 아마존 판매자를 대상으로 젠시를 소개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젠시에 쥬얼리 상세페이지 제작 서비스도 추가할 예정이다.
“작년까진 시장에서 스튜디오랩을 증명하기 위한 초기 단계였다면, 이젠 어도비(포토숍·프리미어 등 사진과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 회사)를 이길 서비스를 완성할 때입니다. 앞으로는 어떤 제품이든 젠시 PB로 사진을 찍고, 젠시로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커머스 혁신이 일어날 겁니다.”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