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천식 진단, 대학때 SCI급 논문쓰고 호흡 힘든 사람들 위해 개발한 것
AI 활용한 폐 기능 진단 의료기기 ‘더 스피로킷’ 개발한 티알 김병수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같은 기침 증상이라도 감기와 천식은 하늘과 땅 차이다. 차이를 조기에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성질환인 천식은 증상이 나아지기 힘들다.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감기로 치부하고 약만 먹었다가는 증상이 더욱 악화돼 버린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호흡기 질환 검진·재활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티알의 김병수(31) 대표는 천식을 앓고 있다. 한창 뛰어놀 나이인 8살, 2~3주간 기침이 멎지 않아 병원을 찾았고 천식을 진단받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손이 닿는 곳에 비상약과 흡입기를 두고 있다. 김 대표를 만나 호흡기 질환을 다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들었다.
◇모든 치료는 정확한 진단에서부터
대전대 물리치료학과 13학번이다. “물리치료도 신경계, 소아계 등 세부 분야가 많은데요. 3학년 때 ‘심장호흡재활’을 처음 배웠습니다. 2012년에 처음 도입된 분야라고 하더군요. 학부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2시간씩 어르신의 호흡 재활을 돕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심폐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재활 프로그램에 대한 논문을 썼고 SCI급 학술지에 게재됐어요.”
2019년부터 대학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자연스럽게 심장호흡재활실로 배정됐다. “호흡이 힘든 환자의 가래를 빼 주고 호흡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운동을 가르쳐 드렸죠. 재활 치료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환자들의 증상은 들쭉날쭉했습니다. 어떤 폐절제 환자는 증상이 개선되는 듯했지만 하루아침에 악화돼 돌아가시기도 했죠.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과연 도움을 드리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뭔가 다른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호흡 재활 도구 개발에 뛰어들었다. 확실한 효과가 있어야 했다. “원통형 기기를 입에 물고 불었을 때 그 사이를 통과하는 유량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 호흡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검진조차 안 되는 환경에서 재활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 감기로 오인하고 병을 키워서 COPD(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게 아니라, 소를 잃지 않도록 해야 했죠.”
진단·검진이 늦어지는 원인의 중심에는 진단 기기가 있었다. “기존 폐 기능 검사기는 사용 방법부터가 복잡합니다. 숨을 얼마나, 어떻게 불어야 하는지 한참을 설명해야 하죠. 호흡기 내과 전문의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내과로 개원하는 의사를 보면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대부분입니다. 같은 의사라도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타 전문의가 폐 기능 검사 결과를 분석하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쉽지 않아요. 검사 과정도 쉽고, 분석도 쉬운 폐 기능 검사기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연구원에서 창업가로 전향한 이유
2020년 티알을 설립했다. 티알은 연구원(The Researcher)의 줄임말이다. “마지막까지 연구원과 창업이란 두 갈래 길 앞에서 고민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탐색하는 일은 연구원이 하는 것이 맞지만, 그 발견을 세상에 알려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최고의 연구원이 모이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사명을 지었습니다.”
연구원 시절 개발한 호흡 재활 도구를 폐 기능 진단 기기로 발전시켰다. “프로펠러 블레이드의 두께, 유량 측정 센서의 각도 등을 세부적으로 조절해 가며 정밀도를 높였습니다. 이렇게 측정된 값을 미국흉부학회가 발표한 진단 지침에 따라 분석하는 AI도 개발했어요. 숨을 최대한 들이마시고 빠르게 내쉴 때 배출되는 공기량을 FVC(강제 폐활량)이라고 하고, 배출하는 공기량 중 처음 1초의 공기량을 FEV1(1초간 강제 호기량)이라고 하는데요. FEV1/FVC 비율이 80% 미만이면 천식이나 COPD로 의심할 수 있다고 분석할 수 있죠. 이런 공식을 모두 대입해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2년간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폐 기능 진단기기 ‘더 스피로킷’을 완성했다. “객관적인 정확도를 확인하기 위해 기존 폐 기능 진단기기와 더 스피로킷의 검사 결과를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했습니다. 더 스피로킷은 임상병리사 대신 비전문가가 검사를 돕도록 했어요. 임상병리사가 없는 의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길 바랐거든요. 참가자 80명의 폐 기능을 검사했을 때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듬해엔 모집단을 900명으로 늘려 같은 실험을 했고 역시 동일한 결과가 나왔어요. 동시 타당도는 0.999였습니다.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쓴 논문은 제 박사 논문이기도 합니다.”
2023년 3월 더 스피로킷은 의료기기 2등급 인증을 받았다. 의료기기 2등급은 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의료기기로 초음파 진단 장치나 의료 영상 전송 장치가 이에 해당한다. “정식 출시를 앞두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온도·습도·압력 등의 영점을 맞추는 보정 장치가 있어야 의료기기로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어요. 보정 기술이 있지만 기존 의료기기 인증서에는 관련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았죠. 허가증을 변경하느라 3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비로소 그해 10월 더 스피로킷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죠.”
1차 의료기관인 의원부터 종합병원까지 문을 두드렸다. “대부분의 의료진이 처음엔 반신반의하는데요. 직접 시연하는 모습을 보면 열이면 열, 화색이 됩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의원에서 반응이 뜨거워요. 기존 폐 기능 진단기기는 부피가 커서 들여놓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해요. 더 스피로킷은 작은 테이블만 있어도 설치할 수 있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수납장 안에 보관할 수도 있죠. 2025년 4월 기준으로 전국 303개 병의원에 더 스피로킷이 설치돼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도전 그리고 응원
2024년 티알의 매출은 1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인도네시아로 3000만원 규모의 수출 실적도 만들었다. 2025년 3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가 주관하는 스타트업 투자·육성 프로그램 ‘디캠프 배치 2기’에 선정되기도 했다. “연구원에서 창업가가 되면서 오히려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 부분을 디캠프 배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채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의료기기 영업에 대한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최근엔 차기작인 네뷸라이저 ‘더 넵’에 힘을 쏟고 있다. “폐 질환 환자에게 입에 넣고 뿌리는 약물을 처방할 때가 많은데요. 처방한 대로 약물을 도포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요. 이런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네뷸라이저를 만들고 있습니다. 약물 입자를 미스트보다 더 작게 만들어 주고, 약물 도포 기록도 되도록 했죠. 천식 환자의 마음은 천식 환자인 제가 가장 잘 이해하지 않을까요. 중증 폐질환을 가진 분들은 일상생활 자체가 도전이에요. 티알이 그 도전을 끝까지 응원할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