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버지 소 팔아 인생 걸고 시작한 재첩국, 연매출 12억원에 미국 일본 수출까지 대박

더 비비드 2025. 4. 21. 08:46
특허받은 기술로 즉석 재첩국 만드는 정성드리 이영환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섬진강에서 재첩을 잡는 정성드리 이영환 대표. /이영환 대표 제공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곳.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과 그 줄기를 따라 열리는 ‘화개장터’. 경상남도 하동군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다. 

하동 특산물로 간편 식품을 만드는 정성드리 이영환(51) 대표에겐 먹거리도 놓칠 수 없는 자랑거리다. 평생을 하동에서 나고 자란 이 대표는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던 재첩국의 기억을 살려 하동 재첩국 간편 식품을 만들었다. 재첩 세척 방법과 즉석 재첩국 제조법에 대한 특허도 등록했다. 이 대표를 만나 하동의 자랑을 들었다.

◇하동 특산물로 만든 간편 식품

(왼쪽부터) 정성드리 하동 재첩국, 매생이굴국, 우렁이 들깨탕. /정성드리

정성드리는 16년째 경남 하동의 특산물로 향토 음식을 만들고 있다. ‘하동 재첩국’은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으로 만든 간편식품이다. 섬진강은 국내에서 가장 깨끗한 강 중 하나로 맑은 물과 적절한 유속으로 재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재첩 외 천일염 등 모든 원재료를 국내산으로만 취급한다. 2014년 수산물 브랜드 대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매생이굴국’은 남해안에서 잡은 통통한 굴이 주재료다. 여기에 동결 건조 매생이를 더해 바닷냄새를 담았다. ‘우렁이 버섯 들깨탕’ 역시 국내산 재료로 만들었다. 유기농 사육장에서 자란 우렁이와 버섯 3종, 들깻가루를 함께 푹 끓였다. 제조 과정은 식품안전관리인증인 해썹(HACCP) 인증시설에서 이뤄진다. 모두 냉동식품으로 내용물을 꺼내 데워먹기만 하면 된다.

​◇선생님 되겠다던 아들의 새로운 도전

경남 하동군의 풍경. 오른쪽에 섬진강이 보인다. /이영환 대표 제공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 나고 자랐다. 한때는 선생님을 꿈꿨다. “경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보습학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기 위해 여러 기업에 면접을 보러 다니기도 했죠. 당시 취미로 웹 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돈을 받고 사이트를 개발했더니 수입이 꽤 되더군요. 웬만한 중소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보다 벌이가 좋았습니다.”

2005년 ‘하동몰’이라는 사이트를 직접 만들었다. “녹차, 매실, 재첩 등 유명한 특산물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가끔 생산자와 소비자가 충돌할 때가 있었어요. 소비자는 가성비와 품질을 따지고 생산자는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죠. 소비자의 요청을 생산자에게 전달했지만 개선되기는 어려웠어요. 그게 궁금했습니다. 생산자 입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이해하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하동군 금남면에 위치한 정성드리 공장 전경. /이영환 대표 제공

제조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제대로 된 사무실이 필요했다. “집에서 소를 1~2마리씩 키우는 창고가 있었어요. 6~7개월 넘게 아버지를 설득해 마지막 남은 소를 팔기로 했죠. 경매장에 가는 길이 어찌도 슬프던지요. 아버지께서 정식으로 축산업을 하신 건 아니지만, 송아지 한 마리씩 팔아서 목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제가 대학까지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요.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 ‘1년에 송아지 한 마리 값만큼은 꼭 용돈으로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간편식품 하동재첩국 개발노트

​1. 나만의 기술력을 제품에 담아라

재첩을 손질해 재첩국을 끓이는 모습. /이영환 대표 제공

2010년 하동 특산물 간편식품 전문 브랜드 ‘정성드리’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 먹던 재첩국을 다양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간편 식품은 일정한 품질과 균일한 맛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섬진강 재첩이라도 상류·하류에 따라,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이 맛을 잡기 위해 육수 개발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해감과 냉각, 가열 또다시 냉각하는 등의 단계를 담은 즉석 재첩국 제조 방법을 개발해 특허도 등록했죠.”

​재첩 손질 방법도 차별화했다. “재첩의 살에 있는 모래를 빼기 위해 껍데기를 깨뜨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재첩살이 망가지기도 하죠. 껍데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재첩살을 보존할 수 있는 패류 세척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기계를 직접 만들었어요. 물이 나오는 분사부와 밸브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하고 수위에 따라 밸브가 열리도록 했죠. 이 패류 세척 방법 역시 특허로 등록했어요.”

2. 사업 확장의 타이밍을 놓치지 마라

이 대표가 2014 수산물 브랜드 대전에서 대상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영환 대표 제공

수개월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하동 재첩국’ 간편식품을 완성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판매에 돌입했다. “본격적으로 판매한 지 3년 정도 됐을 때 해양수산부에서 주관하는 ‘수산물 브랜드 대전’ 관계자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리 재첩국이 여러 소비자의 추천을 받았다며 출품을 권하더군요. 일단 서류만 넣어보라기에 서류를 제출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한 달 뒤 다시 전화가 왔다. 1차 서류 평가를 통과했으니 2차 심사를 위해 샘플을 보내라는 연락이었다. “기대 없이 숙제를 제출하듯 샘플을 보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상식이 있다며 서울에 올라오라고 하더군요. 행사장은 생각보다 굉장히 컸습니다. 다른 기업들은 직원들을 대동해서 왔지만 저는 가족들이 총출동했어요. 결과는 1위, 대상이었습니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언론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고 주최 측에서는 판로 확대와 마케팅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흔쾌히 응할 수 없었어요. 당시 정성드리의 월 매출은 3000만~4000만원이었습니다.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죠. 아무런 준비 없이 주문량이 늘어나는 건 오히려 독이라고 판단해 대부분의 지원 혜택을 거절했습니다. 대신 사업 확장을 준비했어요. 내가 선택한 길이 옳다는 확신이 생겼거든요. 이 길에 좀 더 힘을 쏟아보기로 했습니다.”

3. 식품 생산의 시작과 끝은 ‘위생’

하동 재첩국을 포장하는 모습. 모든 과정은 해썹 인증시설에서 이뤄진다. /이영환 대표 제공

2015년 연면적 556㎡의 부지에 공장을 증축했다. 아내도 2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힘을 보탰다. “기본부터 다시 다졌습니다. 식품을 제조할 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위생’이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해썹 인증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전통 식품 품질인증을 받았습니다. 홈쇼핑 판매를 시작하면서 홈쇼핑 관계자의 공장 실사도 수시로 받고 있어요. 평균 월 1~2회 정도 여러 기관에서 번갈아 가며 위생 점검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에게 위생 교육도 하고 있죠.”

공장 설비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냉동고’다. “봄에 나는 재첩은 뽀얀 빛깔을 내고 가을 재첩은 맑고 시원한 맛이 특징인데요. 1년 내내 균일한 맛의 재첩국을 만들기 위해 봄·가을 재첩을 적절히 섞어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냉동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하죠. 2023년 스마트팩토리 지원 사업을 통해 냉동고 관리 센서를 부착했습니다. 온도가 설정값을 벗어나면 바로 알람이 뜨도록 했죠. 품질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였습니다.”

4.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다

매생이굴국에 들어가는 굴(왼쪽)과 우렁이 버섯 들깨탕. /정성드리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품군 확장도 필요했다. “신제품을 개발하겠다며 ‘장어’에 꽂혀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르신을 위한 단백질 식품으로 장어탕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장어를 제대로 만지지도 못하면서 매주 장어를 사서 직접 손질했고, 7000만원에 달하는 장어 손질 기계를 들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였어요. 적게 잡아도 1억원은 손해를 본 것 같아요. 회의감이 들었지만 실패를 디딤돌 삼아 새로운 제품 개발에 계속 도전했습니다.”

맑은 국물을 선호했던 기존 소비자층을 겨냥해 매생이굴국을 개발했다. “하동군은 남해군과 바로 접해있습니다. 남해에서 잡은 통통한 굴을 활용해 굴국을 만들었죠. 경상남도 추천상품으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가장 최근에 개발한 제품은 우렁이 들깨탕이에요. 유기농 인증을 받은 식용 우렁이 사육장에서 키운 우렁이를 살만 발라내 다져 넣었죠. 신제품 개발에 보통 5~6개월씩은 걸립니다. 재료 수급부터 가공·포장방법까지 꼼꼼히 신경 써야 하죠.”

◇안정적인 수출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연구

섬진강 변에서 뜰채를 잡고 활짝 웃고 있는 이 대표. /이영환 대표 제공

정성드리의 평균 월 매출은 1억원을 웃돈다. 2022년부터는 일본, 호주, 캐나다, 미국 등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주로 해외에서 거주하는 한인 분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많을 때는 1년에 1억원씩 수출하기도 했죠. 지금은 수출을 못 하고 있어요. 원물 공급은 한정적인데 국내 수요가 늘어서 해외로 보낼 물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수출을 하며 냉동식품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배송 전 과정이나 각 거점에서 보관할 때도 냉동시설이 필요하니까요. 배송·보관이 용이하도록 가공·변형하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2023년엔 ‘재첩 쌀국수’를 만들기도 했어요. 국수나 라면, 동결 건조 식품 등으로 시야를 넓히고 신제품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제대로 잘 만들어서 언젠가는 남극 세종기지에서도 하동의 맛을 느낄 수 있길 바라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