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된 유럽 건물 유리창을 스마트 유리로, 북미·유럽 놀래킨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
PLDC 스마트 윈도우 개발한 뷰전 윤희영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언젠가부터 ‘통창’을 선호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커다랗고 깨끗한 창문이 한쪽 면을 채우면서 공간이 더 넓어 보이고, 바깥 풍경을 즐기기도 더 좋기 때문이다. 가장 큰 단점은 안에서 밖이 보이는 만큼 밖에서도 안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필수인 이유다.
스마트 윈도우를 개발한 뷰전(VSION) 윤희영(41) 대표는 커튼 대신 필름에서 그 해결 방법을 찾았다. 스마트폰에 액정 필름을 붙이듯 창문에 PDLC(Polymer Dispersed Liquid Crystal) 필름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스위치 하나로 투명·불투명을 조정할 수 있다. 윤 대표를 만나 PDLC 필름의 정체를 들었다.
◇철없던 대학생의 눈을 뜨게 만든 것
2002 한일 월드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건국대 화학과 02학번이었던 윤 대표도 그중 하나였다. “놀 수 있는 좋은 핑계였죠. 미래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계속 미뤄뒀습니다. 그러다 3학년 때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PDLC를 접했어요. PDLC는 평소엔 불투명한 상태였다가 전기적 신호를 주면 투명하게 변하는 필름입니다. 호기심과 흥미가 샘솟았어요.”
그 길로 교수를 찾아갔다. “그간 불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이제부터라도 PDLC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했죠. 교수님은 ‘열정만 가져오면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실험방에 합류했습니다. 투명도가 변하는 원리와 물리적 성질에 대해 연구했죠. 그토록 멀리했던 공부가 그땐 어찌나 재미있던지요. 연구에 푹 빠져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수료했습니다.”
산학연계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계기로 2009년 한화그룹 계열사에 입사했다. PDLC 상업화를 위한 연구개발·생산을 맡았다. “대학원 실험방에서는 통제된 환경에서 관찰·연구했다면, 회사에선 대량 생산을 위한 방법과 기술을 연구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가령 큰 면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옷감을 짜듯 롤투롤(roll-to-roll) 방식을 적용해 보는 식이었죠. 이후 교수님이 창업하신 회사를 비롯해 PDLC를 다루는 기업 3곳에서 경험과 경력을 쌓았습니다.”
2021년 어느 날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친구가 창업을 권하더군요. 끈기와 기술력이 있으니 회사를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사실 처음 PDLC를 접할 때부터 언젠가 내 힘으로 이 기술을 상업화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얘길 들었을 때 만 나이가 38살이었는데요. 청년 창업 관련 지원 프로그램의 지원 자격이 만 39세까지였어요. 마지막 기회란 생각에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반전 그리고 또 반전
2022년 1월 20일 뷰전을 설립했다. “당장 생산할 공장을 세우긴 어려웠어요. 대신 OEM 업체를 선정해 생산을 의뢰했죠. 첫해부터 굵직한 일을 맡았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뷰티위크에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를 설치했어요. PDLC에 빔프로젝터의 빛을 쏘는 방식으로 구현했죠.”
같은 PDLC지만 하나라도 다르길 바랐다. 연구개발에 소홀할 수 없었던 이유다. “PDLC는 샌드위치처럼 물질들을 쌓아서 만든 필름이에요. 페트병에 쓰이는 투명한 PET와 지지체 역할을 하는 고분자 물질 그리고 투명도를 결정하는 액정이 있죠. 평소엔 액정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가 전기적 신호를 보내면 한쪽으로 정렬하면서 투명하게 보이는 원리입니다. 여기에 자외선은 99%, 적외선은 80% 이상 차단하는 물질도 넣었어요.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죠.”
투명도를 반대로 조작하는 리버스 모드 PDLC도 개발해 특허를 등록했다. “기존 PDLC는 평소엔 불투명하다가 전기 신호를 주면 투명하게 변하죠. 이를 반대로 바꿔서 평소엔 투명하고, 신호를 주면 불투명하게 변하는 리버스 모드 필름을 개발했습니다. 투명·반투명 중 어떤 상태를 더 많이 사용하는지에 따라 일반 PDLC와 리버스 PDLC 중 선택할 수 있죠.”
시공 방법은 스마트폰 액정 필름을 붙이는 과정과 유사하다. “기존 유리를 탈거할 필요도 없어요. 유리창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물기가 없게 건조한 다음 필름을 붙이면 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요. 스마트폰 액정 필름을 붙일 때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PDLC 필름도 한 땀 한 땀 꼼꼼하게 붙여야 합니다.”
홀로서기 1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자금줄이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투자를 받기 위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죠. 11시에 서울에서 IR(투자 유치를 위한 발표)하고 같은 날 오후 2시 대전에서 발표하기 위해 가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한 적도 있습니다. 병원 입원도 미루고 이튿날 대구에서도 IR 발표를 했어요. 그렇게 발로 뛰어다닌 발자국들이 발판이 돼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무사히 투자를 유치하면서 충북 증평군에 5000㎡(약 1500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세계 최초로 PDLC 필름 재단과 전극 형성 공정을 자동화했다. 반도체 공장 못지않은 클린룸도 갖췄다. “자체 공장 설립은 창업하는 날부터 꿈에 그리던 일이었어요. 원하는 품질의 PDLC 필름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 정말 욕심나더군요. 2024년 10월에 막상 개소식을 하고 나니 어깨가 더 무거웠습니다.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이상 ‘다른 길은 없다, 오로지 직진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한 기술을 넘어 일상의 기술로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북미·유럽 국가들에서는 PDLC 필름이 우리나라보다 5~6배 정도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품질엔 큰 차이가 없는데 좀 더 희소하기 때문이죠. 이 블루오션을 공략하기 위해 미국 텍사스와 일본 나고야에 합작법인을 세웠고 베트남과 룩셈부르크엔 지사를 설립했습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인 프랑스의 ‘스테이션F’를 비롯해 모나코의 공유 오피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펌 사무실 등에 뷰전의 PDLC를 설치했습니다.”
창업 이후 연매출은 매년 껑충껑충 뛰고 있다. 2022년 2억원, 2023년 15억원, 2024년 40억원을 기록했다. 2025년 예상 매출은 100억원이다. 2025년 3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가 주관하는 스타트업 투자·육성 프로그램 ‘디캠프 배치 2기’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간 많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해 봤지만, 이렇게 밀착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어요. 전담 멘토와 함께 사업 전략을 구상하고 현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어딜 가나 손바닥만 한 크기의 PDLC 샘플을 늘 챙겨 다닌다. “스위치를 누르면서 투명도가 변하는 걸 보여드리면 다들 신기해합니다. 그런 반응을 볼 때 내심 아쉬움이 들어요. PDLC가 ‘보편적인’ 기술이 아니라 여전히 ‘신기한’ 기술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만큼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느낍니다. 대중들이 커튼·블라인드와 PDLC를 나란히 놓고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목소리를 내 보겠습니다.”
/이영지 에디터